골목길

 

관솔, 이궁묵

 

 

 

일어설 줄 모르고 주저앉은 어귀 지나

두 귀에 발자국 소리를 매어 달고

수레를 끌고가 듯 걸어가는 등 뒤로

 

쓰러져 누운 그림자를 일으켜 세우려고

발버둥치던 불빛이 꿈틀거리고

지나던 바람 귀신처럼 혼자 우는 밤

 

숨어버린 별을 찾아 헤매던 하늘에는

아이의 이빨 같이 하얗게 드러난

초승달이 돌아누워 눈을 감는다

 

갈고리에 걸려있던 바람마저

신들린 영혼처럼 머물지 못하고

곤히 잠든 조롱박을 흔들고 있다

by 김만석 2015. 3. 22. 07:59



스스로 재래식무기(在來式武器)가 된 사나이

조인호

1  
스킨헤드 소년이 빨간 마스크를 쓴 채 N서울타워 꼭대기 위에 서 있다
철탑 밑으로 케이블카가 멈춰 있다 지상에서, 불발탄을 어깨에 짊어진 사나이가
우뚝 선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을 향하여 육탄돌격한다 
  
해발 479.7m
철탑 101m 탑신 135.7m 거대한 구름기둥과 불기둥 속,
스킨헤드 소년은 탑이 움직이는
두렵고 경건한 음성을 들었다
그 탑이 대륙간탄도미사일처럼 상승하는 것인지 우르르 땅속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탑이 사라진 후 원숭이 두개골을 닮은 스킨헤드 소년은 지상(地上)에 고아처럼 버려졌다

2
11번가 철근 콘크리트 공사장,  
그 때 인부들이 불발탄을 발견한 것은 한낮의 무더운 폭염(暴炎)속이었다
포클레인이 붉게 녹슨 그것을, 땅속에서 서서히 퍼 올렸을 때 
  
붉게 탄 석탄 같은 광대뼈와 횡단철도 같은 쇄골을 가진 한 사나이의 어깨 위,
묵직한 해머처럼 얹혀 있던 불발탄이여  한낮의 태양 아래 붉게 녹슨 그것이,
한 사나이의 어깨 위에서 역사하고 있었다

3
보아라, 불발탄을 어깨에 짊어진 채 북(北)으로 행군하는 한 사나이가 있다
그는 스스로 재래식무기가 된 사나이다
그는 철과 화약을 먹고 회귀하는 사나이다

그는 외부의 충격에 분노하는 사나이다 
  
그가 군사분계선(軍事分界線)을 넘어서자,   
그곳엔 콘크리트의 대지가 무한궤도처럼 영원히 펼쳐져 있었고 
  
밤하늘의 별빛은 가시철조망처럼 숭고했다
비로소 빵과 우유가 그려진 정물화처럼
사나이는 노동을 멈췄고,
지평선 끝에서 원시의 두개골처럼 새벽이 밝아올 때  
사나이는  불발탄의 뇌관을 해머로 내리쳤다

by 김만석 2011. 9. 5. 09:00


애목마을 일출



 

저쯤 하늘을 열면

서주홍


저쯤 하늘을 열면 내 고향 있것지
식전부터 만선한 깃발이 파도같이 나부끼고
선창가 갯바람을 씻어 내리면 어기여차
고기 푸는 뱃사람들 신바람 나것지
귀 설지 않은 어판장 중매인들 소리와
소금집에 선구점 주인까지
희희낙락 휘파람 소리
생선 바구니 가득 머리에 이고 아낙네들
콧노래 흥겹게 걸음새 거뜬도 하것지
출렁출렁 너울대는 바다 저 멀리
내 어릴 적 수평선 바라보면서
꿈 꾸던 그 하늘 아래 조무래기들
시방도 더러는 있을 거다
저쯤은 하늘을 열면 그래
내 꿈 조금은 남아 있것지

by 김만석 2011. 8. 6. 2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