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새 나도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산수유 마을에는 가을이 가득 차 있다.

마을입구 3km전 도로에서 벌써 산수유 나무가 가로수로 즐비하다.

마을은 한가하게 정자위로 떨어지는 은행잎으로 노란길을 만들었고 그 뒤로 탐스런 감나무가 병풍처럼 서 있었다.

滿秋에 잠시 짬을 내어 시 한수 읊어 보는것도 좋겠다.

by 김만석 2008. 10. 29. 1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