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시간을 날아와 캐나다 동부 끝자락에 짐을 풀었습니다.

괜한 그리움이 난데없이 찾아 옵니다. 그래서 그냥 하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Rockwood Parc에서..

 

 

 

by 김만석 2012. 4. 3. 06:14

 

엉킨 실타래 푸는 법

서영식


공 던지기 전 마운드에 선 투수가 삼루를 보며 쓱쓱 두어 번 땅을 밀잖습니까 그러면 지구 끝에서부터 썩은 땅들이 두어 발자국씩 철조망을 넘고 군중을 지나 야구장 매표소를 거꾸로 갈어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얼마나 좋습니까 두어 발자국씩 바다 속 잠겼던 땅들이 모래를 털고 방긋거리며 일루로 걸어오지 않겠습니까 썩은 땅들이 푸른 바다로 밀려 들어가 지구 반대편에서 축축한 밀림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겠습니까 죽여야 좋습니까 볼넷도 주고 홈런도 맞아야 쓱쓱 땅 미는 횟수가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지구 건너편에 가난한 어린 타자가 타석에 서서 누더기 공을 주먹밥인양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 아버지가 이미 바다를 건너 이미 타석에 서 있지 않습니까 그 공이 홈런으로 장외를 뻗어 바다를 날아 아이에게로 간다면, 다음 타자가 나오는 동안 쓱쓱 두어 번 땅을 미는 투수가 웃지않겠습니까 태평양, 대서양 깊은 저층의 바닥들이 두어 발자국씩 육지로 기어와 철조망을 찢고 환호하는 군중이 되었다가 다시 희망을 던지는 마운드로 봉긋 솟구칠 때까지 아웃을 없애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지구 한 바퀴 돌려본다면,
엉킨 실타래는 거꾸로 푸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by 김만석 2011. 5. 30. 07:00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 / 안희선


'그림을 잘 그리려면 눈을 감고 노래를 불러라.
그림에는 눈길을 주지 말고 노래나 한껏 불러라' - 파블로 피카소


스님, 공양은 드셨습니까
견성(見性)하심도 여직 성성하시겠지요
꿈에서 나마 스님을 뵈려고 삼천배를 하다가,
허리가 아파서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그저 멀리서 넌지시
스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것을,
공연한 발심(發心)으로
한 밤의 고요만 뒤숭숭하게 했습니다
스님의 주장자(拄杖子)에 한참 두드려 맞고 나서야
내밀(內密)한 곳을 향해 던진 겁없는 시선(視線)이
예리한 칼날이 되어 뒤늦은 가슴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스님 떠나신 후, 세상은
어두워졌습니다
'이 놈아, 내가 있을 때에도 항상 어두웠다'고
일갈(一喝)하시는 옥성(玉聲)이 귀에 쟁쟁합니다
스님이 말씀하신 산과 물은
속안(俗眼)으로 보기엔
온통 두루뭉실하기만 해서 아무리 눈을
까뒤집고 봐도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닙니다

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들은
산은 산이 아니었다가, 다시 산이 되고
물도 그렇다 합니다
그런데, 그말도 기실(其實) 그냥 슬쩍
스님을 곁눈질한 말 같아 솔직히 마음에는
와 닿지 않습니다
다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건
수십 억년에 걸친 절망과 증오도
알고보면 원래는 희망과 사랑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스님께서 구태여 왜 그런 말씀을
미망(迷妄)의 중생들에게 하셨겠습니까

스님보다 더 큰 그림자가
독(毒) 오른 사바세계(娑婆世界)를 일주하더라도,
여전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겠지요

그래서, 오늘도 하염없이 스님이 그립습니다
아마도 속절없는 인간의 정(情) 탓이겠지요
스님께서 못마땅해 하시더라도
할 수 없지요


허망한 몸 안에 공소(空疎)한 피 모두 흘러
아무 기쁨 없이도 살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스님을 그리워하겠지요





* 성철(性徹 1912∼1993) 큰스님의 법어法語

by 김만석 2011. 5. 2.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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