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사람들


추운 날씨에 손에 입김을 불며 따뜻한 차 한잔에 아침을 연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가게앞에 앉아 지나가는 외국인 근로자와 말을 건네며 하루를 연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제’를 구입할 욕심에 밤낮으로 붐비던 ‘양키시장’이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 생명을 다해가고 있다.


이제는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그저 오랜 세월을 해왔듯 습관처럼 가게문을 연다. 한평 남짓한 가게에 담요를 덮고 천정에 새어나오는 햇살만 쳐다보며 오늘도 하루를 산다.


“할머니! 녹차한잔 하실래요?” 옆가게 아주머니가 묻는다.

“나 오늘 개시못해서 동전이 없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리자, “개시하면 나 한잔 사줘요” 라고 웃는다.


맞은편 명찰가게 아저씨가 오늘도 못나오신댄다. “그나마 장사가 되는 곳이 명찰가게인데 이렇게 며칠을 쉬면 않되는데........“하며 커피파는 할머니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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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가족이다. 경쟁하며 사는 시장사람들이 아니다.

얼마되지 않아 철거될 ‘양키시장’. 아직은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시장사람들도 심장이 뛴다. 그래도 아직은 가게문을 열고 시장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만날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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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커피를 한잔 하기로 했다. 수다쟁이 할머니도 둥굴레차 한잔을 사드렸다.

그런데 만원권 지폐밖에 없지않은가? “이따줘“하며 처음보는 나에게 거금 800원을 외상을 주시는 것이다. 가게앞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할머니는 나에게 말을 하신다.


“내가 평양에서 시집와서 지금껏 인천에 사는데, 첫째 아들은 며느리가 술로 사는 바람에 병으로 죽고 애들(손자들)을 내가 키우고 있어. 둘째는 장애인인데 며느리도 장애가 있어서 둘째네 애들(손자들)도 내가 키우고, 막내딸은 사위놈한테 하도 얻어 맞아서 도망갔는데 지금은 연락도 않돼“하며 낮선 나에게 말을 꺼낸지 1시간이 넘어서야 속에 있는 말을 끝낸다.


얼마나 말을 하고 싶으셨겠나.........혼잣말을 하고 난 “많이 파세요 할머니!”하고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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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많은 분들에게 ‘개시‘를 해드리려고 담배를 사러 담배자판에 갔다.

할머니 한분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언듯 보기에도 80은 쉬이 되셨으리라 보인다.

“레종 블랙 하나 주세요”하자 레종 블루를 주신다. 잠깐 당황하고 자판을 둘러보니 블랙이 없었다. 하는수 없이 블루를 받고 3000월 냈다.

“1800원이야”하시면서 다시 1200원을 건네 주셨다. 레종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가 1800원이고 블랙은 그후에 출시됐다.


이렇듯 시장사람들의 시간은 많이 늦다. 아니 멈춰 버렸을수도 있다.

아주 오래된 기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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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석 2008. 2. 19. 16:22
설명절이면 늘 함께 뒹굴던 친구들,형들,동생들이 생각납니다
동네길 어귀에 자리를 잡고 구술치기에 돈내기를 하며 땅거미가 질 때까지 놀던
종구,동원이형,창순이형.........

눈싸움에 꽁꽁 언 손을 녹이며 먹던 오뎅가게앞, 나의 고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세월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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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의 믈럭이 있던 오뎅가게, 이제는 짐자전차가 세월을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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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평화교회의 찐계란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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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저 연통의 녹물만큼이나 아리고 짙습니다


인천직할시 북구 일신동 290번지 5통6반
나의 살던 고향은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by 김만석 2008. 2. 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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