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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할머니는 일흔이 넘었습니다. 이름이 서영희 할머니입니다.   커다란 옥수수빵을 조그만 손수레에 담고 힘겹게 팔아서 연명했는데 그만 옥수수빵 공장이 문을 닫아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발걸음으로 버려진 종이상자를 줍고 삽니다.  작은 소형 카트(손수레)를 힘겹게 끌면서 종이상자를 가득 모으면 500원에서 천원 정도 고물상에서 받는답니다.  하루에 그 정도 법니다.  그런데 제게 흰 봉투를 내밉니다.  2만원이나 들었습니다.  할머니께 정말 이렇게 많은 돈은 못 받겠다고 다시 돌려드려도 할머니가 당신 마음이니 꼭 받아서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합니다.  세상에.....

빵 할머니는 다섯 평쯤이나 되는 조그만 집이 있습니다.  재산이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할머니집에는 남편에게 너무 맞아서 걷지도 못하는 병든 따님이 얹혀 삽니다.  외손자까지 둘이나 있습니다.  외손자들이 스무 살쯤 되었는데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석유가 터무니없이 비싸서 난방을 할 생각도 못합니다.  전기장판마저 없어서 얼마전에 하나 마련해 드렸습니다.  할머니가 벌어야만 그나마 삽니다.  겨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쌀이나마 떨어지지 않게 드리는 것 뿐입니다.

"할머니, 다 큰 외손자들을 왜 할머니가 돌봐요?"

"핏줄인데..."

빵 할머니의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박용자 할머니는 여든 다섯이십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쉰일 때에야 낳은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설날에 서울에 있는 아들 집에 잠깐 다녀옵니다.  할머니의 작은 집은 고물로 가득합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마지막 남은 집만큼은 팔지 말아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일곱 평쯤 되는 집이 있습니다.  아들도 팔아서 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아들이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그 집이 있다고 할머니는 기초생활 수급권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할머니도 고물을 주워서 겨우겨우 사는데도 아들네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합니다.

박용자 할머니의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명옥 아주머니는 쉰 여섯인가 그렇습니다.  남편은 없습니다.  아들이 서른이고 딸이 스물 일곱입니다.  아들과 딸 둘 다 정신 장애가 있습니다.  장애인 복지관에 주간 동안에는 다니면서 점심을 먹고 소일할 뿐입니다.  명옥 아주머니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허름한 집은 명의가 명옥 아주머니로 되어있지만 사실은 친언니의 것입니다.  동사무소 사회복지사가 집 명의를 돌려주면 가족 전부가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고 해도 언니 때문에 산다면서 막무가내입니다. 

기름 보일러는 작동할 수도 없습니다.  고장이 나지 않아도 석유를 살 수도 없습니다.  연탄 보일러로 바꿀 여력도 없습니다.  일인용 전기요 하나로 세 가족이 추위를 피했습니다.  좀 넓은 것으로 바꿔드렸더니 참 좋다고 합니다.

어제 동 사무소에 가면서 쌀 뒤주에 있는 쌀을 담아가는 사람의 명단을 보았더니 명옥 아주머니 이름이 있습니다.  조그만 비닐 봉지에 하나 담아갈 수 있습니다. 

명옥 아주머니께 물어보았습니다.   전기밥솥이 있는데 보온은 안되고 밥만 되는 것이 있어서 거기다가 밥을 한다고 합니다.  반찬은 무얼해서 드시지요.  아이들이 반찬 없어도 밥을 잘 먹는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장애인 복지관에서 점심은 먹지만 저녁은 집에서 해 먹여야 하는데, 당신은 국수집에서 먹지만 아이들 밥 해 줄 방법이 없어서 동사무소에 가서 뒤주에 쌀을 담아온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민들레국수집 창고에 작은 밥솥이 하나 있습니다.  8인용 전기밥솥입니다.  깨끗하게 닦고 밥을 해 보았더니 아주 잘 됩니다.  명옥 아주머니께 선물해야 겠습니다.  쌀과 함께 드려야겠습니다.  반찬없이 밥이라도 자식들 맘껏 먹게하면 좋겠습니다.

명옥 아주머니의 마음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어머니의 마음들 때문에 여리디 여린 철부지 목숨들이 살아납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출처:민들레 국수집

by 김만석 2008. 2. 27. 1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