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30일부터 10월5일까지 열리는 안성 바우덕이 축제에는 연휴이어서 그런지 3일에는 약20만명이 찾았다. 가족들과 오순도순 손을 잡고 한가로운 가을을 즐기며 들러본 바우덕이축제의 맛은 역시 '어름(줄타기)사위'이다. 제일 많은 관람객을 부른 '어름사위'는 젊은 사위꾼의 입담과 묘기로 환호성을 자아냈다.





















"아, 이놈이 말이야, 저~기가 가까운줄 알고 덤벼들었으나, 막상 올라와 보니 천리가 다되어 보이내 그려", "내가 실력이 있으면, 무사히 건너는 거고 실력이 없으면, 염라대왕한테 가는 것이니, 이보게들, 거 굿거리장단이나 신명나게나 두드려보세~~"

바우덕이는 안성의 농가의 소작공의 자식으로 태어나 1853년 5세의 나이로 남사당패에 맡겨졌다. 최초의 여성 '꼭두쇠'로 남사당패의 우두머리가 된 바우덕이는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당상관 정3품의 옥관자를 수여받았다.

바우덕이 축제는 이번이 두번째이지만 그 당시 윗것들과 아랫것들의 신분차를 이들의 공연과 말시위에서 느낄수 있다.

이후 안성 남사당패는 전국의 남사당패의 최고 우두머리로 활약했고 천한 놀이문화를 대중문화로 발전시켜 백성들의 억눌린 한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결국 1870년 23세의 나이에 폐병으로 숨을 거두게 되었으며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에 무덤이 있다.

바우덕이의 무덤을 찾는중 결국 해가지기 시작해 돌아왔다. 오는 도중 신라 천년 고찰중 하나인 석남사를 들렀다.





















대웅전에서 내려다본 석남사의 전경이다. 대웅전앞에 세워진 두개의 석남석탑은 사진 왼쪽의 석탑 4층에 작은 불상이 자리하고 있다.

서운산(瑞雲山, 547m)은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솔가한 호서정맥이 서북쪽으로 휘돌아 흐르다 안성의 칠장산에서 한남정맥을 갈래친 다음 남서쪽으로 꺾어져 내리는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산줄기는 계속 남쪽으로 내달려 서천을 지나 금강 하구에서 걸음을 멈춘다. 서운산은 높고 우람하지는 않지만 산세가 부드럽고 웬만해선 물이 마르지 않는 계곡을 품고 있어서 산의 동서 양쪽에 절이 자리하고 있다. 서쪽 산자락에 앉아 있는 절이 남사당의 근거지로 알려진 청룡사이고, 동쪽 기슭의 절이 바로 석남사이다 .

대웅전 부처께서 바라보시는 왼쪽석탑의 제일 상단에 또다른 작은 불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불상은 서쪽을 향애 좌불하고 있으며, 그 뒤로 세월을 말해주듯 검붉은 돌이끼가 끼어 있었다.

석남사 뒤로 500여미터를 오르면 마애여래불상을 만날수 있다
.


바우덕이축제로 다시 돌아오면, 위에 소개한 어름사위는 남사당을 수련하고 전수받은 전문가이고 지금 소개할 꾼들은 아무츄어들이다.



우두머리의 지휘를 기다리는 유치원생들이 눈이 매서운 가운데 제일 오른쪽 어린이가 그만 북을 치고 만다.

그리고 이내 인사하고 다시 시작해
무사히 장단을 마쳤다.






수소문끝에 작년에 만났던 동아방송예술대학의 공연단을 찾았다. 아름다운 산적께선 이미 졸업을 해서 만날수 없었지만 그 후배들을 만날수 있었다.


오른쪽 사진은 작년에 각설이 공연을 한 동아방송예술대학의 학생이다. 

기획에서 연출, 의상등 모든것들을 직접 창작한 이 동아리의 무대는 약간은 어색하고 서툴었지만 전문 남사당패의 무대와 잘 어울어져 감칠맛을 냈다.

그런데 한가지, 이글을 집사람이 볼수도 있지만 난 이 여학생이 참 인상깊은 이유는 왜 일까?..........



오늘도' 짬'을 내어 나라를 둘러 보았다. '6070세대' 골목을 들러 탁주 한사발에 파전을 먹고 온통 세상이 한복에 굿거리,세마치장단이 득실대는 그런 세상에서 잠시 쉬었다.

18방을 (방위병근무 18개월을 이컫는 말)받아 군장에 강행군이란 말을 나에게는 어색하지만 8시간을 카메라가방을 매고 강행군한 나는 당장이라도 해병대에 지원할수도 있겠다. 물론 가기는 싫다, 걸었지 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시원한 가을바람과 함께 석남사 낡은 기와장 사이로 속세를 바라본다.

by 김만석 2008. 10. 4.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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