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30대 이하의  젊은 사람들은 '짜웅'(또는 짜옹)이란 말을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40대이상으로 군생활을 한 사람이면 이 말을 금방 알아듣고 그 뜻도 정확하게 알고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잘아는 사람들도 이 말의 어원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정당하지않은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상급자나 관계자와 담합을 한다'는 의미의 이 '짜웅'은 군에서 주로 사용돼 부정부패가 만연됐던 70년대 우리 사회전반에서 폭넓게 사용됐었다.
 
일종의 비속어인 이 단어는 그렇게 널리 사용됐음에도 국어사전에는 어디에도 나와있지않다.

오늘날 점차 사라져가고있는 이 단어가 베트남어에서 유래됐고 베트남전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면 실소를 금할수 없을 것이다.

베트남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인사말 짜오(chao)와 할아버지나 손윗사람을 예의를 갖춰 부르는 옹-ㅁ(ong)이라는 호칭이 합쳐져 한국식 베트남어인 짜웅(짜옹)이 탄생한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모든 인삿말에 짜오를 앞세우고 뒤에 연령과 남녀 지위 등에따라 적절한 호칭을 붙이는데 예를 들면 손위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남자 중 본인과 차이가 있는 경우는  '짜오 옹-ㅁ',  약간의 손위로 친한 남자에게는 '짜오아잉-ㄴ',  손아래 남녀에게는 '짜오앰', 어린에게는 '짜오 차우', 여자손위사람에게는 '짜오치''등으로 부른다.  
정중한 인사인 짜오옹-ㅁ이 한국으로 건너와 좋지않은 바꿔진  과정은 당시 베트남전의 상황을 알아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63년부터 시작된 베트남전은 73년  미국의 철수와 부정부패로 고전하던 남베트남측의 무조건 항복으로 막을 내렸다.

혹자들은 이 전쟁에서 보여준 월맹군과 베트콩의 용맹성을 승리의 원동력으로 거론하지만 더 중요한 원인은  남베트남의 부정부패와    미국에 대한 반감이었다.

미국은 베트남인들을 회유하기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여러가지 대민사업을 펼쳤지만 그 지원은 극히 일부의 남베트남내 부정부패자들에게만 집중됐다.

한국군 역시 미군과 비슷한 대민사업을 계속했고 이 사업을 노린 베트남의 지방 토호나 관료들은 끊임없이 한국군 주둔지를 드나들었다.  이들은 주둔지를 드나들때마다 한국군 병사들을 만나면 연령에 관계없이 느끼한 미소와 함께  '짜오 옹-ㅁ'을 연발했다.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지휘관급이나 대민사업 담당자로서는 이들의 인사가 정겹게 들렸을지 모르지만 정문 보초나 이들을 자주 만나는 일반 사병으로서는 그들의 출입목적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기때문에  썩 좋지않은 말로 들렸다.

그래서 사병들은  아는 베트남인이 '짜오 옹-ㅁ'이라고 인사를 하고 들어 오면  "저 자식 또 짜웅한다"며 역겨워했고 동료가 상관을 만나고 나오면 " 너 짜웅하고 왔냐?"고 물었다.
이때부터 우리 군에서는 짜웅이란 말이 부정담합이란 속어로 사용됐다.

우연히도 국내에서는 6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조국근대화 바람과 함께 각종 차관자금 등을 둘러싼 부정부패가 만연돼 '짜웅'이란 말은 어원도 모른채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중의 하나가 됐었다.

지금 '짜웅'의 말뜻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음을 볼때 우리 사회 역시 그만큼  젊고 건강해 짐을 느낄수가 있어 기분이 좋다.

나는 어제도 직장조직이라는 가장 무서운 조직때문에 내 일과시간도벌릴수 밖에 없었다과연 샐러리맨은 누구의 것인가?분명히 나의 것은 아닐것이다
회사라는 조직의 부품이고 '상사'라는 이시대 이데올로기의 소품인것같다.
나는 어제 술을 한잔하며 바랬다
"월요일에 사표내는 꿈을 꾸기를....."

사용자 삽입 이미지

by 김만석 2007. 12. 22. 20:33
| 1 |